History 4

명도전(明刀錢)과 맥족(貊族)

화폐는 신석기부터 사용해 왔다. 물론 현재의 지폐(紙幣)나 동전(銅錢)이 아닌 귀하고 보배로운 것을 이용하여 물물교환으로부터 화폐(貨幣) 사용으로 바뀐 것이다. 고도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석기에서 청동기로 넘어가면서 이 화폐는 청동제 화폐로 바뀌게 된다. 말 그대로 銅錢인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는 우리의 고조선(古朝鮮)과 주변의 트랜스유라시아계통으로 갈라진 민족과의 피나는 경쟁으로 얼룩졌다. 예맥(濊貊)과 동이(東夷)는 우리 민족이었고 농경민족이었다. 하지만, 흉노(匈奴), 동호(東胡), 숙신(肃慎), 선비(鮮卑), 거란(契丹), 말갈(靺鞨), 몽골(蒙古), 여진(女眞)[만주(滿洲)] 등은 유목민족으로 우리와도 싸웠지만, 통일되지 않은 한족(漢族化된 鮮卑族)과 많이 싸웠다. 그리고 이들 ..

History 2024.10.13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오늘은 光復節이다. 우리의 歷史觀을 바로 確立하고 역사왜곡(歷史歪曲)을 하는 세력들로부터 우리를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요즘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일본의 역사왜곡과 중국의 東北工程에 의한 역사왜곡 등과 이에 동조하는 국내외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야 할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보수(保受)인 것이다. “歷史를 잊은 民族에게 未來는 없다.”라고 丹齋는 말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이런 마음으로 독립에 임했을 것이다. 단재 신채호(申采浩, 1880~1936)는 역사를 통해 우리의 獨立과 希望을 갖도록 한 독립운동가이다. 신숙주의 18대손으로 9살에 중국역사서 자치통감을 익히고 13살에 사서삼경을 독파하고, 1898년(19살) 성균관에 입교하여 26살에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며, 황성신문에서 언론을 시작하였다. 그..

History 2024.08.15

노량(露梁)은 노루목

내 고향은 노량(露梁)이다. 서울, 城南에 온 지가 30여 년이 되었는데,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신다면, 난 항상 역사 문제를 낸다. 왜냐하면, 노량(露梁)이라고 대답하면, 거의 대부분이 노량진(鷺梁津)을 되뇐다. 많이 들어본 노량이 노량진(鷺梁津)인 것이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제독이 맞는지도 모르겠다..)의 마지막 해전이 어디냐고..? 그런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맞추는 사람이 별로 없다. 슬픈 일이다. 명량해전(鳴梁海戰), 한산도대첩(閑山島大捷)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데, 노량해전(露梁海戰)은 생소(生疏)해한다. 이유는 두 큰 해전에 비해 노량해전은 이순신 장군이 살기 위해 싸운 것보다 죽기 위해 싸운 듯하다. 임진왜란의 원흉인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사망으로 왜군이 철군을 하지만, 우..

History 2023.10.09

서울 한양도성순성길 (漢陽都城巡城길)

광복절이자 말복인 8월 15일, 거의 2년 만에 서울한양 성곽을 지인들과 함께 다시 둘러보았다. 한양도성과 4대문(돈의문은 멸실, 지금의 정동사거리)과 함께 스탬프투어 뱃지도 받았다.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은 개방 후 많이 갔고 인왕산도 젊은이들과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코스이지만, 남산은 거의 가본 적이 없다. 지금의 서울은 꽤 넓게 확장되었지만, 조선 개국 당시에는 도성과 사대문 안쪽만이 한양, 한성이었다. 사대문중 북악산 능선에 위치한 북대문인 숙정문(肅靖門)은 실제 사람이 다니지 않는 대문이었다. 조선이 1392년 개성에서 개국을하고 1394년에 한양으로 천도를 하였으며, 한수(漢水, 한강)의 북쪽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한양도성은 태조가 1396년부터 궁궐과 도성 방어용으로 지은 것이다.한수도 고려..

History 2022.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