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노량(露梁)은 노루목

Aristode 2023. 10. 9. 17:35

내 고향은 노량(露梁)이다. 서울, 城南에 온 지가 30여 년이 되었는데,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신다면, 난 항상 역사 문제를 낸다. 왜냐하면, 노량(露梁)이라고 대답하면, 거의 대부분이 노량진(鷺梁津)을 되뇐다. 많이 들어본 노량이 노량진(鷺梁津)인 것이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제독이 맞는지도 모르겠다..)의 마지막 해전이 어디냐고..? 그런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맞추는 사람이 별로 없다. 슬픈 일이다. 명량해전(鳴梁海戰), 한산도대첩(閑山島大捷)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데, 노량해전(露梁海戰)은 생소(生疏)해한다. 이유는 두 큰 해전에 비해 노량해전은 이순신 장군이 살기 위해 싸운 것보다 죽기 위해 싸운 듯하다. 임진왜란의 원흉인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사망으로 왜군이 철군을 하지만, 우리를 그토록 괴롭힌 왜군을 곱게 돌려보내긴 너무나 억울했을 것이다. 하지만, 장군은 살아도 임금의 질투에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을 직감했는지, 적군의 총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유명하다.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마라(戰方急愼勿言我死). " 이 말은 나중에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로 각색되어 국사시간에 배운 것으로 기억한다.
이순신 장군은 남해 다도해의 섬들과 좁은 수로를 이용하여 왜군을 격파해 나갔다.
노량(露梁), 노량진(鷺梁津)과 장항(獐項)은 모두 같은 좁은 수로인 노루목과 같은 곳이다. 한자(漢字)는 서로 다르지만, 모두 우리말을 漢字로 쓰다 보니, 서로 다른 말처럼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라도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고뇌(苦惱)를 생각하며 노량해전(露梁海戰)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김훈의 '칼의 노래'도 장군의 고뇌(苦惱)가 돋보인다.
-노량(鷺梁)과 노루목(獐項)
http://gudaragouri.blogspot.com/2008/07/8-320-394.html?m=1

8. 노량(鷺梁)과 노루목(獐項)

서기 1934 년 신불출 작사 , 문호월 작곡 , 박부용의 노래로 노들강변이란 신민요가 발표되었다 . 노돌강변 봄버들 휘늘어진 가지에다가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 매여나 볼가 에헤요 봄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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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해전
https://ko.m.wikipedia.org/wiki/%EB%85%B8%EB%9F%89_%ED%95%B4%EC%A0%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