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의문[疑間; 의심(疑心)스럽게 생각함. 또는 그런 문제(問題)나 사실(事實)-네이버 사전]에 대한 생각이나, 그런 것은 조용히 핸드폰으로 AI에게 물어본다. 물어보기는 한다. 당연히 궁금하니까.. 그런데 남(시람)에게 물어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상대가 그것도 몰라? 라든지, 자신이 생각해도 그런 것도 모른다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낯간지럽다.
차라리 疑心이라면, 물어보지는 않겠지.. 의심스러운 마음이 드니깐 말이다.
그런데 疑는 本來 외字이다. 예전에는 한 글자로 의미를 전달했다. 특히 갑골문자는 외字로 의미를 전달했다. 이것이 疑心이나 疑間으로 두 글자로 뜻을 전달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함축(含蓄)적이다. 疑는 疑心이라는 말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우린 한 글자로는 말이 되지 않는다. 이건 상당히 오래된 관습이다. 아마도 주나라부터(?).. 그 이전이었을 수도 있다. 한 글자보다 두 글자가 의미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疑의 OC는 /*ŋɯ/이다. '응'이나, '엉'? 이 맞지 않을까? 우리 音은 '어'/ə/(schwa)나 '으'/ɯ/가 서로 교차하는 경우가 많다.(내가 경상도출신이라서 발음이 잘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 경상도가 우리 중세발음이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래서 난 '엉'? 이 疑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그 뜻이 音이 되어 '응>의'로 우리에게 전해졌다.

명심보감 성심편에 의인막용 용인물의(疑人莫用 用人勿疑)'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사람을 의심하거든 쓰지 말고, 일단 쓰거든 의심하지 말라.'는 뜻이다.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아끼는 말이다. 또 비슷한 말로 疑人勿使使人勿疑란 말도 있다. 사람을 쓰든지, 부리든지 모두 용병술이다. 世宗의 뜻도 같은 이치이다. 그래서 세종은 많은 인재를 登用했다. 그래서 訓民正音도 필요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인재를 등용하기위해선 貴賤을 떠나서 文字를 모르면 소통(疏通)의 어려움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로는 question보다 doubt가 더 疑에 가깝다. 본래 뜻은 두 마음에서 疑間(疑心)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 two(PIE root *dwo-)가 생겼다. 의심은 두 마음의 갈림길에서 생기는 것이다.